1. 시험을 다시 치게 되기까지..
나는 일반행정직으로 지자체에서 근무했는데, 연고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동기들 잘 만나서 잘 놀고 잘 지냈다. 결혼도 했고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니 인생이 뒤바뀌었다. 육아를 위해 친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친정 부모님이 근무지로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가 아이를 맡겨놓고 일주일에 한 번 들여다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친정집과 가깝게 집을 구하고 나와 배우자는 각자 왕복 2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하였다. 몸도 마음도 닳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인사 교류, 전입 시험, 일방 전출로 몇 년을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두드렸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아 나는 너덜너덜해졌고 거의 포기 상태가 되어 사기업으로의 재취업을 고민했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으로의 취업은 나이 때문에 용기가 나지 않아서 작은 회사에 경리나 사무 쪽으로 생각했다. 급여야 당시에도 많지 않았고 유류비 등등을 계산하고 나면 손에 쥐는 금액은 정말 적었기 때문에 집과 가깝기만 하다면 기꺼이 옮기고 싶었다. 그리고 공무직도 염두에 두었다. (나는 실제로 휴직 후 2개월은 공무직 시험 준비를 했었다. 결과는 탈락이었고 공무원 시험 준비 기간만 줄어들었다.) 중소기업으로의 재취업은 주변에서 너무 많이 말렸다. 재시험이 제일 빠르다는 친구의 우스갯소리에 결국 재시험을 결정했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인터넷 강의비와 교재비 등 각종 비용을 공무원 시험(앞으로 공시라고 하겠음)이라는 도박에 걸었다.
2. 그간의 공직생활에 대한 회고..
일반행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행정'이다. 행정이 있는 곳에 일반적으로 다 근무를 한다. 지자체 경험밖에 없으니 내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겠다. 시청, 동사무소, 면사무소, 사업소 할 것 없이 일반행정은 전부 인사 발령이 난다. 가서 어떤 업무든 처리해야 한다. 출생신고, 주민등록, 자동차 등록 같은 주변에서 생각하기 쉬운 민원업무부터 각종 사업추진(공사나 용역 등도 포함), 도시계획, 청소, 상하수도, 계약과 지출, 예산, 인사, 감사, 법무, 하다못해 시장님 연설문 작성까지. 모든 일들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복지업무를 일반행정이 하는 경우도 있다. 세금 업무도 세무직이 없는 경우 일반행정이 맡기도 한다. 물론 복지, 세무, 건축, 도시계획 등은 관련 기술직이 주류가 되어 업무를 하지만 일반행정도 반드시 그런 부서에 끼여 업무를 보게 되어있다. 행정이니까. 도망칠 곳 또는 숨을 곳이 많다. 승진을 위한 전략에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 동기 중 하나는 근평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기술직이 주류인 부서로 인사 발령을 받기도 했다. 기술직 예를 들어 토목직은 퇴직 때까지 공사업무를 한다. 공사 업무 중에서도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행정은 힘든 업무를 받게 되어도 길게는 2년만 버티면 대부분 다른 부서, 다른 업무로 발령이 난다. 이 점은 사람마다 장단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업무를 겨우 익혔는데 새로 인사 발령이 나면 또 배우고 익혀야 하니까 힘든 점도 있다. (물론 주민등록 같은 민원 업무를 많이 본 사람은 동사무소나 면사무소를 옮겨 다녀도 그쪽으로 계속 내부 인사를 내기도 하고 특화(?)되는 경우도 있더라). 요직이라 생각하는 인사, 예산, 감사부서는 행정직이 잡고 있으니 본인 하기 나름으로 출셋길도 확보되어 있다. 하지만 출셋길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기술직들은 행정직렬에 비해 소수이다 보니 직렬별로 단합도 잘 되고 승진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치(?)가 있다고 하던데 행정직은 다수이다 보니 단합은 물론이거니와 요직으로 가기 위한 정치, 줄다리기가 필수이더라. 일을 잘하면 요직에 가겠거니 하지만 일을 잘하기만 하면 일만 떠맡는 경우를 매우 많이 보았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저 이름 없는 조연이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건 일반행정뿐만이 아니라 지자체 공무원이면 모두 겪는 힘듦인데 바로 비상근무이다. 비상근무는 날이 갈수록 더 늘어나는 듯하다. 폭염은 폭염대로, 비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은 말할 것도 없다. 여름에는 정말 비상근무가 많다. 사실 예전에는 지역축제에도 차출이 많이 되었지만 요즘엔 차출은 자제하는 분위기라 줄어들고는 있다.
민원은 어떠한가. 말할 것도 없다. 중년 여성분의 위장전입을 반려 처리했더니(305호 전입 신고했는데 305호는 없는 주소였고 전화해서 혹시 착오가 있었냐 물어보니 어영부영 전화를 끊더라) 신용정보회사 직원의 협박 전화를 하루 종일 받은 적도 있다. 다른 업무를 보지 못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청약 안 돼서 600만원 손해를 보면 네가 책임질거냐고 온종일 따지는 데 둘의 관계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대기인원이 많아 오래 기다렸던 민원인의 아이에게 초콜릿 과자를 줬다가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거냐며 폭언을 들은 적도 있다. 인감도장 변경을 위해 주소지 주민센터로 가셔야 한다고 얘기했다가 네가 뭔데 가라 마라냐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장난이었겠지만 이장에게 맞은 적도 있다. 민원실 프린터에 토너 교체를 제때 하지 않았다고 감사실에 신고받은 적도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이런 일이 생긴 데는 내가 단서를 제공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저 을이였을 뿐이다.
물론 좋았던 기억도 많다. 아니 대부분이 좋았던 기억이다. 때때로 보람도 있었고 자부심도 있었다. 부모님의 자랑이 된 점도 좋았고 당시 교제하던 연인과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시험에 합격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험합격의 불확실성 때문에 재시험을 망설인 것이지, 일의 만족도가 높아서 망설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이 다음 글에는 재시험 결정 후 일어난 고민과 재시험 준비 과정을 작성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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