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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월 말에 의원면직 신청을 했다.

신규교육이 9월에 있어서 원치 않게 의원면직을 했다.

의원면직 절차는 굉장히 간단해서 허무할 지경이었다.

정부24를 통해서 사직원을 기관에 제출하면 기관 인사담당자가 행안부나 감사원 등등에 날 의원면직 시켜도 될지 여러 가지 조회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다. 공문이 취합이 되면 면직 절차가 거의 끝난다.

그런데 이 공문을 6개 기관에 보내서 취합을 하기 때문에 하루 이틀 만에 면직이 되지는 않는다. 2주 또는 운이 나쁘면 3주 정도 소요될 수 있다.

행안부 같은 경우에는 전국에서 공문을 접수하여 처리하기 때문에 접수될 때마다 회신을 하지 않는다고 인사담당자가 얘기해줬다.

사실 나는 공무원 연금 문제도 있어서 최대한 남은 육아휴직을 다 쓴 뒤 면직하고 발령을 받았으면 했다.

육아휴직 기간도 공무원 재직기간에 포함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 합격 발표일로부터 약 2주 뒤 신규교육이 있었는데, 육아휴직 상태에서 신규교육을 받는 건 휴직의 목적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겸업의 오해가 있다는 인사담당자의 말을 듣고 부랴부랴 면직 신청을 하였다.



면직 처리가 되는 동안 많은 생각이 들었다.

허무하기도 하고, 시원섭섭하기도 했다.

가깝게 지냈던 동료들에게 전화를 돌리기도 했고 안부를 묻기도 했다.

나의 면직 공문이 뜨던 날 전화를 많이 받았다.

예상치 못했던 직원들에게도 전화를 받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의원면직 후 지급 신청해야 하는 돈, 혜택: 연금공단 퇴직수당, 행정공제회 납입금, 노조 전별금, 직장 금고 전별금



면직하고 나면 일단 경력증명서를 인사팀에 말해서 받아놓는 게 좋다.

임용 서류 내면서 경력합산신청을 할 때도 필요하고 또 발령 전 공공기관에 근무할 때도 필요할 수도 있다.

그리고 공무원연금 퇴직수당을 신청해야 한다. 연금 신청이 아니라 퇴직수당이므로 헷갈리지 말자.

어떻게 보면 퇴직금 비슷한 느낌인데, 금액은 아주 적다. 

나 같은 경우에는 10년 차인데 1천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 책정되었고 그 중 절반 가까이는 육아 휴직 중에 내지 못한 기여금으로 충당이 되어 계좌로 입금된 돈은 6백여만원에 불과했다.

그리고 행정공제회 가입해 있었는데 교육행정직은 교직원공제회 가입을 해야 하고 행정공제회의 가입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적은 돈이지만 공제회 납입금도 지급신청을 했다. 

여기까지는 몹시 어려운  문제가 없는데, 기관마다 노조에서 주는 전별금을 확인해 봐야 한다. 

내가 있던 기관에서는 노조에서 전별금을 줬는데 5년 미만은 10만원, 5년 이상은 50만원으로 되어있다고 했다. 

그리고 직장 금고 회비를 낸 것이 있다면 이 부분도 담당자에게 챙겨달라고 언질을 넣어야 한다. 전별금 명목으로 주는데 알아서 잘 챙겨주는 담당자가 있는 반면 아닌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탈탈 털린 백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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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참고용일 뿐인 계획은 뒤로 하고 실제로 내가 어떻게 공부했었는지를 기술해 보겠다.



국어(선재국어): 국어는 내 효자 과목 중 하나이다. 나는 다행히 어릴 적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어릴 때 봤던 만화 사자성어와 속담으로 10년 전 첫 공무원임용 시험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게 지금까지 기억이 난다는 게 정말 신기할 뿐이다.
하지만 문법 부분과 문학 이론 부분 때문에 이선재 강사님의 압축 이론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사자성어와 한자 단어를 매일 하나씩 눈으로 익혔다. 사자성어는 쉬웠다. 한자를 읽지 못해서 눈으로 익혔고 한자는 그냥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심정으로 익혔다. 그리고 독해야산다 추론강화편을 들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문제를 푸는 것도 굉장히 힘들었다. 이후에는 계속 동형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다. 국어는 일주일에 두세번 정도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었다.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는 않았지만 한번 문제 풀이 강의를 들을 때 집중했다. 모의고사 문제를 시간을 정해두고 푼 다음에 그 시간을 체크해놓고 또 헷갈리는 문제들은 체크해놨다. 그리고 왜 헷갈리는지 지문 중에 어떤 것들이 어떤 이유로 헷갈리는 지를 적어놨었다. 그리고 강의를 들으면서 헷갈린 문제와 틀린 문제들은 내가 잘못 생각했던 부분을 확인하고 놓쳤던 부분을 빨간펜으로 적고 형광펜으로 체크했다. 강의가 끝나면 다시 1번부터 문제를 훑는데 내가 확실히 알고 있고 선생님과 풀이가 같았던 문제는 과감히 생략했고 헷갈리거나 틀렸던 부분은 왜 헷갈렸는지 선생님의 풀이 방법은 어땠는지를 복습하면서 체화했다.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성적은 큰 기복 없이 좋은 점수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영어(이동기): 나는 영어를 좋아한다. 스피킹은 못 하지만 문제 푸는 건 재밌다. 영어는 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 베이스는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본 이론강의는 듣지 않고 공부 초반부터 이동기 강사님의 하프 모의고사를 꾸준히 풀었다. 그리고 문법 포인트 강의를 듣고 하프 모의고사 중 문법을 틀린다면 어느 포인트인지 체크했다가 강의가 끝난 후 문법책을 다시 확인했다. 영어단어는 가벼운 마음으로 몇 번 쓰면서 외웠고 독해는 틀리면 어떤 단서를 놓쳤는지 확인하고 넘어갔다. 그러다가 동형문제풀이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랐다. 시간을 정해놓고 문제를 풀고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스킵을 하면서 들었다. 어휘 부분은 다 듣고 문법과 독해는 틀린 문제가 있는 경우에만 들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왜 틀렸는지 체크하고 다시 되짚어보고 넘겼다. 영어도 큰 기복 없이 꾸준히 점수를 유지하였다.


한국사(최진우, 문동균): 한국사는 정말 계륵이었다. 한국사를 100점을 받지 못하면 다른 과목에서 메울 수가 없는 틈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원하는 강사가 공단기에서 다른 학원으로 옮겨 그 학원으로 결제했더니 좀 지나니 또 다른 학원으로 옮기는 것이 아닌가. 나는 더 이상의 추가 결제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강의를 계속 듣지 않고 기본 이론 강의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다. 다행히 멱살 잡고 끌고 가는 강의 스타일이어서 중요한 사건 연표를 외울 수 있었고 큰 흐름을 쫓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문화사 파트나 정치사 파트 등 큰 파트별로 나눠서 특강을 올려줬기 때문에 모자란 부분을 계속 메울 수 있었다. 국가직 시험 이후로는 공단기 다른 강사님의 하프 모의고사를 들었다. 한국사는 문제를 많이 풀어보지 못하고 하프 모의고사 몇 회만 풀어보고 시험을 치게 되었는데 지방직에서 100점을 받은 건 운이 좋았다고 봐야 한다.


행정법(써니 박준철): 행정법은 믿고 듣는 써니 행정법을 들었다.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기본 이론 수업을 듣고 나니 어느 정도 기억이 나는 게 많았다. 압축이론 수업은 듣지 않았다. 기출문제를 회독하고 동형모의고사를 계속 풀었다. 기출문제 모아놓은 걸 풀다 보면 같은 지문이 여러 시험에 반복해서 출제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틀린 지문에 계속 체크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형광펜으로 틀린 지문을 옳은 지문으로 바꿔서 줄을 좍좍 그어가면서 풀었다. 나중에는 형광펜 칠한 지문만 계속 읽어보고 외웠다. 동형은 거의 100점이 나올 정도로 재밌게 공부했다.


교육학(이경범): 이경범 강사님 강의를 들었다. 울면서 했다. 다른 과목보다 시간을 많이 썼다. 이론 수업은 너무 재밌었다. 하루 4시간씩 이론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문제만 풀면 계속 틀렸다.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학자와 이론을 연결하기가 어려웠고 또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같은 단어라도 학자들은 서로 각자 정의를 내려 썼고 미세한 차이를 구별하는 건 어려웠다. 처음엔 필다나 강의를 들으며 어떻게든 요약해서 간략하게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기출문제를 풀었을 때 정답을 맞히는 건 아니어서 많이 고민했다. 나중에는 기본이론서를 계속 줄줄 읽었다. 요약 노트는 조사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은데 조사가 생략되다 보니 의미 파악이 힘들었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나 선후관계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기본 이론서를 줄줄 읽으며 뉘앙스와 흐름파악을 계속 했다. 동형 모의고사 제일 뒤편에 출제표에 어느 문제를 틀렸는지 체크해놓고 많이 틀린 파트는 다시 또 이론서를 읽었다. 모의고사에서 55점을 받은 날은 독서실에서 울면서 책을 봤다. 저녁에 집에 가서도 또 울었다. 배우자 앞에서도 울었다. 점수가 너무 나오지 않아서 다른 과목은 100점을 받고 교육학은 60점만 받자는 목표까지 세웠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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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포스팅에는 내가 생각한 과목별 공부팁을 올려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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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공시간

#순공부시간

#현직공무원

#재시

#수험생활

#공부시간

#공부계획



하루 동안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가용시간은 얼마나 될까?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내 계산은 다음과 같았다.

아침 5시 일어나서 아이 일어나는 8시 전까지 3시간
아이 등원하는 10시부터 저녁 시간 6시 전까지 8시간
아이가 자는 9시부터 잠들기 11시 전까지 2시간

평일은 총 13시간은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친정 부모님이 아이 하원부터 저녁 시간까지 도움을 주시기로 해서 가능했다.
이 13시간은 휴식 시간과 점심 식사 시간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못해도 10시간은 공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주말은 따로 계산했다. 배우자는 바빴고 친정 부모님도 휴식이 필요했다.
아침 5시 기상해서 아이 깨기 전까지 3시간
아이가 자고 나면 무조건 2시간은 한다.
이렇게 주말은 5시간을 잡았고 일주일 60시간을 확보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약한 과목은 무엇인지
기본이론 과목을 수강할 것인지 아닌지
과목별로 커리큘럼은 어떻게 따라갈 것인지
하루에 과목을 몇 과목을 공부할 것인지
과목별 공부 순서는 어떻게 할 것이며 몇 시간을 배분할 것인지 등등.

스스로 생각하기에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계획을 짰다.
나는 계획에 도취되어 자신만만해 있었다.
큰 착각이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는 진리(?)를 매일 상기하게 되었다.
아이의 기상 시각은 들쑥날쑥했다. 아이뿐만이랴. 매일 5시에 일어나겠다는 내 다짐이 무색했다. 매일 같은 시각에 일어나 회사 출근을 하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아침 공부 시간 3시간은 나의 오만이였다.
익숙하지 않은 아침 준비와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하고 어린이집을 보내고 나면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가방을 챙겨 독서실을 갔다. 아침에 계획했던 못한 공부를 꾸역꾸역 하며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점심을 먹고 가볍게 스트레칭하면서 다음 공부를 걱정했다.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까. 시험에 붙을 수 있을까. 시간과 돈만 날리는 건 아닐까. 걱정과 불안 속에서 강의를 듣고 문제를 풀었다.

아이가 자주 아픈 것도 날 불안에 빠뜨리는 이유가 되었다. 아이는 자주 아팠다. 어린이집 등원을 못 하는 날이면 늘 나를 찾았고 나는 아픈 아이를 두고 늘 갈등했다. 열로 상기된 얼굴로 엄마를 찾는 아이와 명색이 육아휴직인데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날 죄인으로 만들었다. 거기에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내고 돌봐야 하는 부모님에 대한 부채감도 날 힘들게 했다.
(심지어 어머니는 9월 말부터 입퇴원을 반복하셨고 11월에는 수술하셨다.)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뺏기고 놓치고 흘려보내고 나니
나의 하루 순공시간은 많은 날은 7시간, 대부분은 5시간 안팎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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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직렬 선택 기준(교행 선택 이유)
처음 공시 준비했을 때 일반행정을 쳤던 것은 내가 바보천치였기 때문이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는 공시 준비하시는 분들은 직렬을 잘 따져보시길 바란다.
요즘은 공무원 시험 관련한 카페에서 직렬 고민 글을 올리는 사람도 많이 보이고 또 공무원 시험 합격을 위해 전략적으로 직렬을 선택하는 사람도 많이 보인다. 나는 왜 10여년 전에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고 망설이지도 않았나. 뭐가 그렇게 눈에 씌어있었던 걸까.
공무원의 종류에 대해서는 마지막에 간단히 설명을 붙여 놓겠다.
국가직이냐 지방직이냐도 중요한 문제니 직렬과 함께 고민해 보시길.

고민 끝에 재시험을 결정하고 나니 이번에는 직렬이 고민이 되었다.
일반행정은 연고지에서 퇴직까지 근무할 수 있지만 속사정을 알기에 꺼려되었다.
워라밸을 꿈꾸기에는 교육행정직이 끌렸다. 남들도 워라밸을 꿈꾸기 때문에 경쟁률과 필기 컷 점수가 높은 편이다. 교행직은 교사 임용을 준비하던 수험생이 많다. 교육학이라는 과목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교육학의 'ㄱ'도 모른다. 더군다나 도내 발령이라는 치명적 단점도 있다. 나는 출퇴근의 어려움 때문에 재시험을 결정했는데 그 점만 생각한다면 교육행정은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일행의 속사정 때문에 마음이 너무 흔들렸다. 비상근무도 싫고 민원에 치이는 것도 싫었다. 동네마다 십수 명은 있는 회장님들도 그만 만나고 싶었다. 일행과 교행의 장단점을 비교해 보고 저울질을 하다가 마지막엔 교행을 선택했다. 어차피 나는 10년 전에 행정학이 아닌 사회를 시험을 쳐서 임용되었기에 행정학이나 교육학이나 모르는 건 매한가지였고 학교 근무하며 4시 30분에 마치면 먼 거리는 어느 정도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아이 학교 입학도 좋은 핑계가 되었다.


4. 재시 준비
재시험과 직렬을 결정한 시기는 육아휴직 전이었다. 휴직 전 3월에 공단기 프리패스를 결제하였다. 공단기 선택의 이유는 10년 전 합격 당시 들었던 국어, 영어, 국사, 행정법 강의의 강사가 전부 공단기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웬 행운이람' 하고 룰루랄라 결제를 하고 잊고 있었다. 아뿔싸! 또 다른 위기가 생겼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어째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7월 휴직 후 교육공무직 시험을 준비하면서 보니 7월부로 국어와 한국사 강사가 다른 학원으로 옮긴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각각 다른 학원으로. 비용이 부담스러운 나는 프리패스를 결제할 때도 3개월 할부로 결제했었는데 이렇게 되면 또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건가 하고 좌절 아닌 좌절도 했다. 그리고 고민할 시간이 많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국어는 공단기 내 다른 강사의 강의를 듣기로 하고, 국사는 옮긴 학원의 수강권을 결제했다.


우여곡절(?) 끝에 강의는 준비되었고 환경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했다. 9월 한 달은 거실에서 강의를 듣고 공부했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공부가 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평소 청소와 빨래는 쳐다도 안 보면서 공부할 때만 되면 왜 그렇게 거슬리는 게 많은지. 갑자기 세면대 청소를 하고 물때 방지를 위한 코팅을 하질 않나, 그릇들 위치를 바꿔대질 않나.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 결국 독서실을 결제했다. 사방이 트인 스터디카페도 가보았지만 아무래도 나는 폐쇄형의 독서실이 잘 맞았다. 그렇게 환경을 갖추고 책도 주문하고 강의를 들으며 본격적인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공무원의 종류]
근거 법률에 따라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으로 구분한다. 근거 법률에 따른 구분이라 국가공무원이건 지방공무원이건 같은 분류로 또 세부 직종을 구분하는 데 경력직과 특수경력직으로 구분한다. 특수경력직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고 경력직 공무원을 보면 된다. 경력직 공무원은 일반직과 특정직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대부분 시험 준비생들은 일반직을 준비한다고 본다. 경찰, 소방, 교육(교사), 군무원 등은 특정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준비하는 일반직 공무원에는 또 행정직과 기술직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종류가 다양하다. 대부분의 공시생들은 일반행정, 교육행정, 사회복지, 세무직, 사서직, 교정, 선관위, 의회직, 보건직, 간호직, 토목직, 건축직, 녹지직, 전산직 등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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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험을 다시 치게 되기까지..
나는 일반행정직으로 지자체에서 근무했는데, 연고지가 아니었다. 그래도 동기들 잘 만나서 잘 놀고 잘 지냈다. 결혼도 했고 3대가 덕을 쌓아야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도 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고 나니 인생이 뒤바뀌었다. 육아를 위해 친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친정 부모님이 근무지로 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가 아이를 맡겨놓고 일주일에 한 번 들여다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친정집과 가깝게 집을 구하고 나와 배우자는 각자 왕복 2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하였다. 몸도 마음도 닳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인사 교류, 전입 시험, 일방 전출로 몇 년을 문을 두드렸다. 그렇게 두드렸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아 나는 너덜너덜해졌고 거의 포기 상태가 되어 사기업으로의 재취업을 고민했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으로의 취업은 나이 때문에 용기가 나지 않아서 작은 회사에 경리나 사무 쪽으로 생각했다. 급여야 당시에도 많지 않았고 유류비 등등을 계산하고 나면 손에 쥐는 금액은 정말 적었기 때문에 집과 가깝기만 하다면 기꺼이 옮기고 싶었다. 그리고 공무직도 염두에 두었다. (나는 실제로 휴직 후 2개월은 공무직 시험 준비를 했었다. 결과는 탈락이었고 공무원 시험 준비 기간만 줄어들었다.) 중소기업으로의 재취업은 주변에서 너무 많이 말렸다. 재시험이 제일 빠르다는 친구의 우스갯소리에 결국 재시험을 결정했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인터넷 강의비와 교재비 등 각종 비용을 공무원 시험(앞으로 공시라고 하겠음)이라는 도박에 걸었다.

 



2. 그간의 공직생활에 대한 회고..
일반행정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행정'이다. 행정이 있는 곳에 일반적으로 다 근무를 한다. 지자체 경험밖에 없으니 내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겠다. 시청, 동사무소, 면사무소, 사업소 할 것 없이 일반행정은 전부 인사 발령이 난다. 가서 어떤 업무든 처리해야 한다. 출생신고, 주민등록, 자동차 등록 같은 주변에서 생각하기 쉬운 민원업무부터 각종 사업추진(공사나 용역 등도 포함), 도시계획, 청소, 상하수도, 계약과 지출, 예산, 인사, 감사, 법무, 하다못해 시장님 연설문 작성까지. 모든 일들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복지업무를 일반행정이 하는 경우도 있다. 세금 업무도 세무직이 없는 경우 일반행정이 맡기도 한다. 물론 복지, 세무, 건축, 도시계획 등은 관련 기술직이 주류가 되어 업무를 하지만 일반행정도 반드시 그런 부서에 끼여 업무를 보게 되어있다. 행정이니까. 도망칠 곳 또는 숨을 곳이 많다. 승진을 위한 전략에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 동기 중 하나는 근평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기술직이 주류인 부서로 인사 발령을 받기도 했다. 기술직 예를 들어 토목직은 퇴직 때까지 공사업무를 한다. 공사 업무 중에서도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행정은 힘든 업무를 받게 되어도 길게는 2년만 버티면 대부분 다른 부서, 다른 업무로 발령이 난다. 이 점은 사람마다 장단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업무를 겨우 익혔는데 새로 인사 발령이 나면 또 배우고 익혀야 하니까 힘든 점도 있다. (물론 주민등록 같은 민원 업무를 많이 본 사람은 동사무소나 면사무소를 옮겨 다녀도 그쪽으로 계속 내부 인사를 내기도 하고 특화(?)되는 경우도 있더라). 요직이라 생각하는 인사, 예산, 감사부서는 행정직이 잡고 있으니 본인 하기 나름으로 출셋길도 확보되어 있다. 하지만 출셋길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기술직들은 행정직렬에 비해 소수이다 보니 직렬별로 단합도 잘 되고 승진에 대해 어느 정도 예상치(?)가 있다고 하던데 행정직은 다수이다 보니 단합은 물론이거니와 요직으로 가기 위한 정치, 줄다리기가 필수이더라. 일을 잘하면 요직에 가겠거니 하지만 일을 잘하기만 하면 일만 떠맡는 경우를 매우 많이 보았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저 이름 없는 조연이 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건 일반행정뿐만이 아니라 지자체 공무원이면 모두 겪는 힘듦인데 바로 비상근무이다. 비상근무는 날이 갈수록 더 늘어나는 듯하다. 폭염은 폭염대로, 비오면 비가 오는 대로, 눈은 말할 것도 없다. 여름에는 정말 비상근무가 많다. 사실 예전에는 지역축제에도 차출이 많이 되었지만 요즘엔 차출은 자제하는 분위기라 줄어들고는 있다.
민원은 어떠한가. 말할 것도 없다. 중년 여성분의 위장전입을 반려 처리했더니(305호 전입 신고했는데 305호는 없는 주소였고 전화해서 혹시 착오가 있었냐 물어보니 어영부영 전화를 끊더라) 신용정보회사 직원의 협박 전화를 하루 종일 받은 적도 있다. 다른 업무를 보지 못하게 괴롭힘을 당했다. 청약 안 돼서 600만원 손해를 보면 네가 책임질거냐고 온종일 따지는 데 둘의 관계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대기인원이 많아 오래 기다렸던 민원인의 아이에게 초콜릿 과자를 줬다가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거냐며 폭언을 들은 적도 있다. 인감도장 변경을 위해 주소지 주민센터로 가셔야 한다고 얘기했다가 네가 뭔데 가라 마라냐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장난이었겠지만 이장에게 맞은 적도 있다. 민원실 프린터에 토너 교체를 제때 하지 않았다고 감사실에 신고받은 적도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이런 일이 생긴 데는 내가 단서를 제공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저 을이였을 뿐이다.
물론 좋았던 기억도 많다. 아니 대부분이 좋았던 기억이다. 때때로 보람도 있었고 자부심도 있었다. 부모님의 자랑이 된 점도 좋았고 당시 교제하던 연인과 결혼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시험에 합격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험합격의 불확실성 때문에 재시험을 망설인 것이지, 일의 만족도가 높아서 망설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이 다음 글에는 재시험 결정 후 일어난 고민과 재시험 준비 과정을 작성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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